
인어공주(재해석)
[ *주의사항* 작품 내 스포일러나 트리거 소재 등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공주님과 왕자님이 행복한 결실을 보는 동화는 어릴 때 자주 읽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읆을 동화는 단순하게 인어가 사랑에 빠지는 달콤한 이야기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복잡한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인어공주가 인간의 다리를 정말로 가지고 싶어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 하나부터 열까지 원래 동화와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과연, 원래 동화에서처럼 인어공주가 멍청하게 물거품을 되는 걸 택했을까? 마녀는 정말로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시기 질투해 빼앗는 나쁜 존재일까? 그 속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로시, 바다 밖의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존재들이 가득하다고 해! 너무 궁금하지 않아?"
"바다 밖의 세상은 인간들로 가득해. 궁금하긴 하지만 자칫 잡히면 어쩌려고 그래? 적어도 경매장에 끌려가 비싼 가격에 팔리고 말 거야. 100% 안전하지 않은 이상 육지로 올라가면 안 돼."
"너도 그렇고 리카누나도 인간들이 나쁘다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 난 인간을 믿어! 언젠가는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둘 다 인간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할 나이 때의 일이었다. 인어들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동화책과는 다르게 나라를 세우지 않고, 소수민족으로 무리를 지어 거처를 옮기며 살곤 했다. 인간들에게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소수인원 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인간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심해에서 살며 인어 외의 종족과는 일절 교류를 하지 않았기에 문명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개체 수가 처음부터 적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적어졌는데 이유는 인간들의 호기심과 흥미로 인해 인어사냥으로 인해 개체 수가 줄고, 언제 인간에게 잡혀 죽임을 당해 귀한 인어고기가 될지도 모르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죽음에 일일이 신경 쓰면 안 된다는 사회에 이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성년이 되면 가족과는 다른 무리에서 지냈지만 아직은 어린 로시에게는 그저 먼 이야기도 같았다. 그리고 무리에 싸움이라도 하면 안 되기에 대장을 뽑고는 했다.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맡을 인어공주의 부모님이 한 무리의 대장이었고, 어릴 때부터 함께 다닌 소꿉친구인 유성과는 어릴 때부터 한 무리에서 지냈다, 아마 성년이 되면 또 다른 무리로 이동해 갈라지겠지만 소중한 친구였다.
그들 중 대장의 외동딸인 로시는 한 무리를 이끄는 부모님을 보면서 존경심과 한편으로는 인간들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인어들에게는 지느러미와 아가미가 익숙했고, 물속은 인어들의 숨 쉬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사랑도 하고 밥도 먹는 공간이었지만, 주변 인어들이 말하는 인간들은 인어들이 익숙한 물속에서는 숨을 쉬지 못하며 아가미도 지느러미도 없다고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인간들이 인어들을 신기해하는 것처럼 인어들도 인간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고, 인간들이 오기 힘든 심해에서 인간을 보는 일은 없었으니까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들을 한 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볼 수 있잖아? 인간들이 인어를 한 번쯤 보고 싶은 생각처럼….
인간들의 이야기는 로시에게 정말 흥미로웠다. 하지만 인간을 잘 아는 인어들은 모두 다 입을 모아 인간은 나쁜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리카라는 인어는 유성의 사촌지간으로 다른 무리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인어들에게는 유성과 로시는 오랜만의 태어난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포함되지 않은 무리에서도 인기가 많았고, 제일 그 둘과 나이도 잘 맞고 유성과 사촌 시간이라는 이유로, 어린 로시와 유성의 이야기와 놀이 상대되어주곤 했다. 항상 리카가 말해주는 인간들의 이야기들은 그 둘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었고, 마냥 어리고 순수하던 둘에게는 그런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인간 어린아이들이 용이나 마법사가 있는 세상을 동경하는 것처럼 리카가 말해주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그 둘에게 정말 판타지 같았다.
그리고 리카는 숨바꼭질을 할 때면 로시와 유성이가 어디에 있든 잘 찾아냈고, 어릴 때부터 잘 놀아줬기에 그 둘은 리카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는 했다. 큰다면 리카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 리카에 대한 신뢰가 꽤 쌓여있었다.
"유성이는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니? 인어들은 언제나 인간을 조심해야 해. 우리가 인간들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언제나 노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리카와 로시의 생각은 어쩌면 같았다. 인간들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아직은 인어가 인간들보다는 약하고 약한 존재라는 말을 하곤 했다. 실제로 인간을 본 적 있는 인어는 드물었지만, 인간과 사랑에 빠진 인어들도 엄청나게 드물었는데 그중 리카는 어릴 적 인간과 사랑에 빠져 한때 인간의 다리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한 대가를 크게 받았고 잠깐 인간의 삶을 살았다고 했는데, 어쩌다 다시 인어가 되었는지는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지는 로시와 유성이는 한창 어릴 때의 일이었고 리카 본인을 포함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에 로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리카언니는 인간을 실제로 보고, 그들의 생활에 들어간 적이 있잖아? 난 언니가 인간이 되어서 다시 안 돌아올 거로 생각했어…."
"그럴 리가, 난 알아버렸거든. 인간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말이야…. 내 말 기억해야 해 로시야, 네가 나처럼 같은 아픔을 겪는 건 바라지 않아."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어린 나이의 궁금증을 뱉을 수 있지 않으냐는 생각으로 말해본 거지만 생각외로 리카의 반응이 강했고 로시의 어깨를 붙잡으며 리카는 말했다 '네가 나처럼 같은 아픔을 겪는 건 바라지 않아.'라고…. 인간세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로시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리카가 인간들에 대한 적대심이 강하다는 것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로시는 1년 전에 인간계로 간 리카의 상황을 보기 위해 육지로 잠시 올라간 적이 있었다. 오늘은 리카에게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리카의 반응 상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로시는 어릴 적 부터 영특했지만 그만큼 머리 회전도 좋았고, 눈치도 볼 줄 알았다. 지금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알았어. 언니' 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게 최고의 답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어쩌면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몰랐다.
1년 전에 리카가 어떤 수단으로 인간의 다리를 얻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리카는 인간의 다리를 얻어 인어무리에서 나가 인간과의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인간은 바다로 사진을 찍으러 왔다가 리카와 사랑에 빠졌고, 그렇게 인간이 된 리카와 함께 살았었다. 그때 리카는 '그 사람은 나의 추악한 모든 면을 사랑해줘.' 라고 말했다. 로시는 정말 10살도 안 되든 나이에 그렇게 따르든 리카가 사라지고, 리카가 그렇게 말하고 사라진 이유가 궁금했다. 추악한 모든 면을 사랑해주는 그 인간이 궁금해졌을지도 몰랐다. 사실 그때 당시 로시에게 리카의 추악한 면이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리카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은 많았지만 로시에게 직접 이야기를 한 사람도 없었고, 살다 보면 누명을 쓸 수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리카을 신뢰하고 존경한다고 말은 하면서 리카의 본모습을 회피하려 들었던 걸지도 몰랐다. 자신이 존경하는 이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인어는 없을 테니까….
로시는 어릴 적 육지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인어의 법을 어기고 올라간 적이 있었다. 인간이 된 리카을 한 번쯤 보고 싶었다. 추악한 모습마저 사랑받는 인간 리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너무 부럽고, 궁금했다. 그런 리카을 자신이 마주한다면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리카을 보고 해맑게 축하해줄 수 있을까?
생각외로 로시는 똑똑하고 영악했다. 인어는 바닷속에 살기에 CCTV 같은 게 없었고 오로지 증언으로 만들어지는 신뢰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성이와 숨바꼭질을 하는 척하며, 완벽하게 아무도 없는 음습한 곳에서부터 서서히 육지로 올라갔다. 나중에 어디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숨바꼭질하다가 잠들었다고 하면 그만 이였고, 소꿉친구인 유성이가 제대로 증언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 정도로 순수한 친구였으니까. 그런 영악한 덕에 로시가 육지 세상을 봤다는 걸 아는 이는 없었지만, 로시가 그날 육지로 올라가 봤던 건 행복한 리카의 모습도 아닌 바다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인간을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구해줬었다. 어째서 그 아이 을 구했냐고 묻는다면 '바다는 인어들의 구역이야. 그런 곳에서 자살을 생각하다니 인어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해.' 라고 대답할 게 분명했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도 흥미도 아닌 그저 단순한 불쾌감. 어찌 보면 이 동화 속의 왕자와의 첫인상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녔다.
자살을 시도하는 빨간 머리 아이를 물에서 건져 올렸다. 인간의 언어는 할 줄 알았지만 쓰는 법을 알지 못했기에 다시는 바다에서 자살하지 말라고 적어둘 수도 없었다. 그저 어딘가에서 오는 사람 목소리에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로시는 혹시 빨간 머리 아이가 자신에 대한 걸 기억해내서 불어버릴까 봐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말들을 하곤 했다. 그때 당시에는 로시가 자신이 인어라서 알아듣지 못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야, 꼬맹이 내가 너한테 위치추적기를 달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죽으려고 환장했냐?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심보는 어디서 배워먹은 거야!"
"뭐야, 벤더우드 요원…. 위치추적기는 또 언제 달아둔 거야."
요원? 위치추적기? 아직 로시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들로 가득했지만 분위기로 어림잡아 생각할 수는 있었다. 꼬맹이라고 불리는 빨간 머리의 아이는 역시나 바다에서 숨질 생각이었구나 라는 걸 그걸 내가 구했지만 벤더우드 라는 사람이 구했다고 생각하는구나! 라고…. 어차피 인어는 들키면 안 되는 존재니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평생 벤더우드 라는 존재가 자신을 발견했다고 그리 믿었으면 했다. 더는 그 둘의 대화를 엿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괜찮았다. 로시가 육지에 가서 인간을 봤다는 걸 아무도 몰랐고, 그저 순수하고 멍청하게 '인간은 아가미가 없다고? 말도 안 돼!' 라며 신기해하면 아무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로시는 영악하게 자랐다. 그동안 멍청하게 인간에게 사냥당한 인어들이 가득했고, 덕분에 친구인 유성이는 인간에 대한 생각이 꽤 많이 바뀌었다. '인간과 인어는 함께할 수 없어.' 라고 중얼이기도 했고, 주변의 인어들이 점차 사라지자 심리도 흔들리곤 했다. 그렇게 인간과 사랑에 빠지던 리카 마저 무엇에 홀린 것처럼 계속 인간은 끔찍한 존재라며 그 둘에게 속삭였었다. 어느 날 갑자기 라카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리카의 지속한 부재는 리카을 신뢰하던 로시와 유성에게 크게 다가왔다. 로시가 성년이 되도록 리카는 나타나지 않았고, 리카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었다. 사체는 찾지 못했기에 인간들에게 팔려갔다는 소문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인어가 사라지는 일은 그들에게 흔하디 흔한 일이었기에, 그리 오래 가는 소문은 아니었지만 리카는 특이 케이스였다. 인간이 된 적이 있었기에 또다시 인간이 되어 인어를 팔아먹고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해 제대로 된 증거 없이 리카을 욕하는 이들까지 나왔다. 인어들은 목격으로만 이루어진 신뢰관계 였으니까 한번 나 버린 소문을 바로 잡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특히 너희는 조심해야겠다…. 리카 그 녀석이 언제 유혹할지 모르잖아? 정말 끔찍해 죽겠어~ 마녀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날 때부터 언제 사고 칠 것 같더라~"
인간도 인어도 그 점은 똑같았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남 욕하는 건 쉬운 그런 점. 리카가 사라지고, 인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원래부터 인어들을 사냥하는 인간들의 수법이 강해져 멍청하게도 인어들이 쉽게 잡혔고, 그걸 리카 탓을 하는 건 정말 아둔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헐뜯기엔 좋은 주제였고, 마침 리카도 사라졌기에 그 소문을 바로 잡을 이도 사라졌기에 인어들은 리카을 헐뜯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마녀? 판타지에 나올법한 그런 존재가 있긴 해?"
"넌 몰랐구나~ 동쪽 숲에 가시의 숲이 있잖아? 그곳 깊숙한 곳에 사는 모양이야….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어들은 지느러미가 잔뜩 찔려서 못 들어간다더라고~ 그리고 마녀의 힘이 아니라면 리카가 어떻게 인간이 되었겠어? 정말 한때 리카랑 한 무리였다는걸 생각하면 아직도 무서운 거 있지? 뭐, 로시 너는 리카가 아끼니까 죽을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소문을 좋아하는 인어는 정말 많았다. 그런 소문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다수가 나쁘다고 한다면 나쁘다고 믿는 인어들…. 로시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런 인어를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저렇게 주절거려 주는 덕에 하나 알게 되었다고…. 인어들에게 조차 마법이라는 건 판타지 속에나 존재했다. 인간들의 과거에 마녀사냥이 있던 것처럼 인어 세계에도 있었다. 하지만 옛이야기는 아니고 현재진행형 일 뿐이었고, 마녀로 몰리는 이들은 동쪽 가시 숲에 숨어지내며 마녀라고 불릴 뿐이었다. 마녀에 대한 정보는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지만 동쪽 가시숲에 대한 건 알고 있었다. 바다는 인어들의 영역이었고, 어릴 적 붙어 숨바꼭질을 핑계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 탓에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다쟁이 인어 말과는 약간 다른 게 있었다. 뾰족한 가시들에 일반 인어들은 지느러미가 찔려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지만 로시는 숨바꼭질에서 동쪽 가시숲 안쪽으로 숨은 적이 있었다. 가시들이 로시을 찌르지도 않았고, 순순히 길을 비켜줬으며, 리카가 금방 발견했기에 로시는 그저 그런 신기한 숲이라고 생각했다.
수다쟁이 인어의 말을 믿는 건 아니었지만 한번 확인해볼 가치는 있었다. 그곳에 리카가 있다면 더더욱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마녀에 대한 궁금증은 인간들도 흔히 있는 것 이였고 인어라고 호기심과 궁금증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한번 가 봐야겠다. 동쪽 가시숲….' 라는 생각과 함께 웃어 보였다. 수다쟁이 인어는 '로시 너는 리카가 아끼니까 죽을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라며 누가 봐도 비꼬는 말을 해왔지만 그건 로시와 관계없었다. 수다쟁이 인어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 있었고, 그걸 증명하듯이 가시숲은 로시을 찌르지 않았으니까. '저것도 비꼰다고 하는 말인가? 유치해.' 정말 내가 뜻도 모르고 웃어주니까 순진하고 마냥 어린아이로 아는 인어들은 로시가 보기에 멍청해 보였다. 그런 인어들은 로시에게 난 저런 인어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본보기가 돼주곤 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동쪽 가시숲은 가지 말아야겠어요."
로시와 유성이는 인어들의 기대주이기도 했고, 제일 귀여움 받는 막내들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디를 가던 눈길을 받았지만 아직은 어린 인어이기에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로시가 성년이 되고 나서는 스스로 해보겠다는 로시의 말에 의해 다들 똑 부러진 로시라면 괜찮겠지 라는 의견이 오갔고, 덕분에 마음껏 성년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인어들에게 막내라는 건 어찌 보면 예쁨을 한몸에 받는 자리였지만 귀여움을 받는 만큼 간섭도 잔소리도 많았다. 혼자서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이 취급은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지만 제일 어리고 위치적으로 낮은 로시가 따질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똑똑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자라왔기에 아마 따진다면 어떤 소리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에 로시는 그저 웃으며 '이제 저도 어른이니까 스스로 해볼게요.'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관심을 꺼 달라는 말이었지만 다른 인어들에게는 우리 막내가 다 컸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행동했다.
성년이 된다고 육지로 올라가도 되는 건 아니었다. 인간은 미성년인 인어와 성년인 인어 상관없이 잡아들였기에, 육지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법이 있었지만 어릴 적 처럼 사라져도 그다지 큰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인어들은 언제 인간에게 잡혀 팔려나갈지 몰랐으니까 성년이 된 인어들에 대한 정을 떼는 게 자신의 신상보호에 좋았다. 어쩌면 이기적일지도 몰랐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인간을 죽이는 방법도 택 할 것이다.
영악한 아이는 그만큼에 스트레스가 함께 왔다. 언제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착한 아이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했고, 그래야 살 수 있는 인어의 세계에서는 정신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성년이 될 때까지 로시의 스트레스 해소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수단이든 제약받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성년이 되고부터는 제약이 줄자 로시에게는 육지로 자주 올라가 바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물론 인간은 아직 무서웠기에 인간이 바다에 오지 않을 시각에, 올 리 없는 구석진 곳에서 부르곤 했다. 우연히 찾은 바위가 잔뜩 있고 풍경이 좋은 동굴은 로시의 안식처이기도 했고, 인어도 인간도 아닌 로시만의 사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관중 없는 노래는 정말 로시의 삶의 낙이었고, 로시의 목소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성숙하고 아름답게 변했다.
그런 사적인 공간은 로시는 정말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지만, 밤마다 바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커지고 커져 바다에 악귀가 들었다는 소문으로 인해 악귀 소탕작전이라며 인간들이 횃불을 들고 바다에 온 일이 있었고, 그저 앉아서 노래를 부르던 로시는 인간들에게 들킬 뻔한 일이 있었다. 바다로 도망가려던 차에 바다로 가는 길까지 인간들로 막혀 고민할 때쯤 하지만 어디서 본 빨간 머리의 남자가 손짓으로 이리로 오라며 숨겨주었고, '어디서 나왔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경계할 수밖에 없었기에 로시는 그 아이을 빤히 보게 되었다.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요.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데 저 사람들이 가면 다 설명해줄게요."
라는 아이의 말에 그저 고갤 끄덕였다. 아이라고 하기에는 꽤 큰 성인의 몸이었고, 특이하게 생긴 안경에 본 적이 있다면 까먹을 리 없는 인상이었지만 어디서 봤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여기서 잡히고 싶지도 않고 이상하게도 신용이 가는 그 아이의 말에 그저 조용히 사람들이 갈 때 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조용해진 동굴에서 사람들이 갔는지 보고 오겠다며 어디 가지 말고 꼭 기다리라며 로시에게서 떨어졌고, 알았다는 말과 함께 얌전히 있던 자리에 있었다. 보통 같으면 인간을 보자마자 도망가기 바빴을 텐데 지금 나가는 건 죽으러 가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적어도 아이를 믿는 척하며 다수의 인간이 사라지게 되면 지느러미로 때려서라도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한 명 정도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마음이 이기적이라고 하기엔 로시에게는 생존본능이라고 하는 쪽이 더 가까웠다. 멍청하면 죽는 세상에서 자랐는데 이 정도 생각도 못 하면 그냥 죽어버릴 테니까. 아이가 떠난 지 약간의 시간이 흘러갈 때쯤 로시의 지느러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어의 지느러미로는 육지에 올라오는 게 한계가 있었고, 인간들이 발견하기 힘든 구석에 숨은 로시는 슬슬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축축한 동굴이라서 이 만큼 버틴 거지만 얼마나 더 버텨야 아이가 올까…?' 푸석해지는 지느러미를 꼭 잡고는 조금만 더 버텨달라는 아이의 말을 믿고 기다렸다.
'당신을 기다리는 게 멍청한 선택은 아니길 바라..'
"미안해요, 너무 늦었죠? 사람들이 주변에 없는지 확인을 한다고 좀 늦었어요. 아…. 바다까지 업어줘야 할 거 같은데 잠시만 업혀주실 수 있어요? 정 불안하면 그 지느러미로 때려도 괜찮아요."
지느러미를 꾹 잡고 있다.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아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이가 날 속이고 인간들을 잔뜩 불러온다면?' 하지만 그 생각을 깨부수는 것 마냥 아이는 미안하다며 나타났고 그 소리에 번뜩 정신 차릴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양동이에 바닷물을 담아 다급하게 왔다. 가능하면 인간들에게 쫒기던 그 혼잡한 상황에서 지느러미를 못 봤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각인시키는 마냥 그 아이는 지느러미가 말랐을까 봐 바닷물을 가져왔고, 양동이의 바닷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업혀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호의적으로 구는 아이를 보고 그 누가 때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작게 한숨 쉬며 업혔다. 신세 지는 건 정말 싫지만 살기 위해서 라면 어쩔 수 없이 아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로시가 생애 처음으로 인어의 지느러미가 쓸모없다고 느낀 날이었다.
그런 로시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는 인어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로 가득했다. '어떻게 첫눈에 반한 인어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 할 수가 있겠어요.' 아이는 사실 알고 있었다. 이 인어가 전에 날 구해준 인어라는걸…. 하지만 먼저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혹시 기억하지 않고 있다면 섭섭하겠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내가 잡아가면 어쩌려고 그래요? 의심 같은 거 안 해보는 거에요?"
어쩌면 자신을 알아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심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수법으로 로시에게 속이면 의심을 안 해보는 걸까 하는 걱정이었다. 인어에게 도움을 받은 이후로 행복한 삶이라고 하기엔 어려웠지만 살려준 인어를 위해 살아왔다. 나 자신도 놓은 내 목숨을 구해줬다는 것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아이와 인어는 서로 완전 다른 생각과 첫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의 질문에 로시는 그렇게 인어가 멍청하게 보이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세계에서는 붕어 머리 라고 하는 걸 욕 이라고 한다고 들었고, 그런 말은 인어들에게도 굴욕이나 다름없었다. 사는 세계와 가치관이 달랐기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르게 받아드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잡아가면서 그런 멍청한 소리를 뱉는 인간은 본 적 없어요. 다들 착하고 친절하게 말하는게 당연 하잖아요? 아무리 인어가 생선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사고방식이 단순하진 않아요."
의심할 거였다면 의심할 터 였다. 아니, 의심을 아예 안 하고 있다고 하기엔 거리감이 있었지만 그건 이 아이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많이 본 아이는 '그것도 그러네요. 인어에 대한 건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례했다면 미안해요.' 라는 말과 함께 무척이나 섭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로시는 단지 까칠하게 말한 자신의 말에 섭섭하게 느꼈다고 생각했고, 굳이 그 섭섭함을 풀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섭섭해 하면 내가 미안해할 줄 이라도 아는 건가 천만 해. 인간들이 지금까지 해온 짓이 얼마나 잔혹한데.' 어쩌면 편견과 착각에 사는 건 인어였을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해온 짓은 잘했다고 하기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인간 전부가 인어사냥을 동참하지도 않았고, 적어도 지금 자신을 구해주는 이 아이는 인어에 대해 호의적이란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로시는 인간이 미웠다. 어쩌면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아이는 그런 로시의 마음을 전부 아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을 포함해 인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자신을 살려준 인어에 대한 고마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좀 더 로시와 친해지고 싶었고, 감사인사를 하고 팠다. '적어도 인어 씨가 눈치채줬으면 좋겠는데….' 첫눈에 반했지만 첫사랑이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게 왜 이리 아픈 것인지 몰랐다. 이렇게나 인간을 싫어하면서 그때 날 구한 이유가 뭐냐고 묻고 싶었다. 김칫국일지도 몰랐지만 기억해냈으면 했다.
"그…. 인어들은 머리카락 색이 다 이렇게 예쁜가요? 아니…. 그러니까, 투톤 색 머리카락 색이 흔하냐는 말이었어요…. 다들 인어 하면 빨간 머리를 생각하잖아요? 아닌가…? 하하…."
어색한 동굴 속 에서 아이가 입을 열었고, 그 말에 로시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바보 같은 말….' 기껏 꺼낸다고 한 말이 머리카락 색에 대한 말이라는 게 너무 귀여워 보였으면서 동시에 웃겼다. 아이는 그 웃음소리에 '지금 웃어준 거 맞죠?' 라면서 더욱 신나서 주저리 말을 해왔다. 과거에 자신이 인어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 인어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이야기까지 정말 바보 같고, 시끄러웠지만 듣기 거북하진 않았다. 오히려 경계하던 마음도 사라지고 나른해져 졸려올 정도로 안정감 있었다. 어째서 이런 마음이 생기는지는 로시는 알지 못했다. 인간은 다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의 말은 쉬지 않게 계속되었고, 그 말 덕분에 로시는 생각해냈다. 과거에 바다에서 자신이 구한 아이가 이 아이라는걸. 그리고 이 아이의 첫사랑이 자신이고, 그걸 아이가 알고 있다는 것 까지 전부 알게 되었지만 이제 와서 '당신을 구한 건 나랍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바다로 돌아간다면 헤어질 인연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귀찮은 건 정말 싫었다. 귀찮다고 하기보다는 정확히는 겁났을지도 모른다. 인어가 인간과 사랑에 빠지다 어떻게 망가지는지 봐 왔고, 인간과 사랑에 빠진 인어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봐 왔기에. 두려웠고, 헐뜯기고 싶진 않았다. 그만큼의 용기는 없었지만, 이 말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용기 내 조심스레 말했다. 고개도 푹 숙여 마치 죄인 마냥 그 아이의 등에 고갤 숨겼고, 손도 목소리도 떨릴 수 밖에 없었다.
"…. 당신이 뭘 바라던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예요. 겁쟁이라서 인간이 될 정도의 용기조차 없어요. 그리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당신을 목숨을 구해준 게 아니고, 바다에 사채가 발견되는 게 싫었을 뿐이었어요. 정말 끝까지 미안해요."
로시의 떨리는 목소리와 행동은 아이에게 보이진 않았지만 느껴졌다. 얼마나 힘들게 꺼낸 말인지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가볍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이 어린 인어에게 얼마나 크게 기대하고 있었는지, 그 기대한 만큼 로시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미안했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웃겼지만 그래도 로시 덕분에 자신이 살 기회를 다시 얻었다는 건 다름없었다. 바다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아마 이렇게 자신의 첫사랑인 인어를 보는 일은 이날 이후로 없을 거라는 사실에 입을 꾹 다물고 마지막으로 할 말을 생각해봤다. 붙잡고 싶었지만 로시에게 부담일까 봐 아이도 두려웠다. 아이의 그런 행동은 반대로 로시도 무섭게 만들었다. '화가 났겠지? 말이 너무 심했나? 하지만…. 다시는 볼일이 없는 테니까 차라리 미움받는 게 나을지도 몰라.' 아이가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다에서 사채가 발견되는 건 질색이었다고 말했으니까 차라리 이런 헤어짐이 나을지도 몰랐다고, 미운털이 박혀서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 둘은 종족은 달랐지만 어쩌면 닮아있었을지도 몰랐다. 첫 만남부터 이리저리 꼬인 인연이라고 하기 좋았고, 아이의 주절거림이 없어서 더더욱 조용하고 축축하던 공기는 바닷가에 다 오고 나서야 시원한 공기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로시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아이를 힐끔 쳐다봤다. 누가 보더라도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었고, 로시는 그게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사실은 로시의 그 성격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에 대해 생각하느라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였지만 둘 다 말로 뱉을 정도의 용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고 마지막까지도 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보고는 '이름도 모르네.' 라는 아쉬운 듯한 중얼거렸다. 아무리 화나도 이름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지. 욕심일지도 몰랐지만 로시의 그 중얼임에 아이는 당황하다가 입을 열었지.
"잠깐만요, 전 그러니까…. 최세영 이라고 해요. 당신이 어떤 의미로 날 살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정말 고마워요…. 이런 말 밖에 못하는 게 꼴사나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땐 정말로 보답해주고 싶어요…. 괜…. 찮죠?"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아이의 삶에는 최세영이라는 인물은 불행했다. 그리고 아이는 최세영이 아닌 여러 이름으로 살아왔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잊히고, 불행했던 그 이름을 알려주고 싶었고 다른 여러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가득했지만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분했다. 또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소중한 인연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동시에 로시가 자신을 꼴도 보기 싫어할까 봐 그게 무서웠을지도 몰랐다. 로시가 계속 말을 하지 않자 '미안해요.' 라는 말을 중얼일 수밖에 없었다. 당신에게 부담감을 주려는 건 아니었는데.
"다음…. 에는…. 벤더우드 라는 분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제 이름은 인어가 아니고, 로시 라고 해요. 도로시…. 다음엔 첫사랑 인어가 아닌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네요."
하고 풍덩이는 소리와 함께 로시가 떠났다. 떠난 그 자리를 멍하게 보다가 얼굴이 새빨개질 수 밖에 없었다. '첫사랑이라던가 그런 말을 내가 왜 주절이었지? 알고 있었잖아? 으으….' 너무 창피했다. 그동안 자신이 로시에 대해 주절거리며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자기가 실수한 건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했고 그런 생각은 집에 가서도 잊히지 않았다. 상대방의 생각을 계속하는 건 로시도 똑같았다.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건 역시 로시에게는 아직은 어려웠다. 계속 자신을 구해준 첫사랑 인어에 대해 주절거리는 목소리와 같이 자신이 웃으면 귀가 빨개지는 귀여운 모습까지 너무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로시의 그런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지고 커져 넋 놓다가 얼굴이 빨개진다든가 그런 일이 잦아졌고, 주변 인어들이 로시가 최근 들어 이상해졌다는 말을 할 정도로 금방 티가 났다.
오랜 시간을 걸쳐 생각했지만 세영이를 잊을 순 없었다. 잊기 위해서 일도 해보고, 다른 인어들과 더욱 잦은 교류를 해왔지만 인어들과 세영이를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아이라면 이런 말을 할 때 이렇게 말 할 텐데, 저렇게 말 할 텐데. 하고 생각하며, 세영이에 모든 점이 궁금해졌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을까?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런 호기심과 궁금증은 다시 보고 싶다는 결론을 내고 말았고, 인간 최세영의 세계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리카언니을 찾아가자. 언니라면 날 도와줄 거야.' 동쪽 가시숲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리카가 사라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리카에게 사랑받던 동생이니까 이 정도는 용서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리카언니는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자만과 오만일지도 몰랐다.
동쪽 가시 숲은 여전히 로시가 가면 길을 열어주었다. 마치 로시가 올걸 예상하였다는 듯 리마는 로시을 반겼고, 리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지만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날 찾아올 거라고 믿었어. 왜냐면 나 밖에 널 구원할 자는 없거든. 로시 너는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닮았어. 닮은 만큼 난 널 이해해 줄 수 있어. 네가 원하는 전부를 내가 줄 수 있어. 어때? 가지고 싶지 않아?"
구원이라던가, 원하는걸 줄 수 있다던가 그런 말을 하는 리카가 이해되지 않았다. 리카는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그저 로시가 자신을 찾아와줬다는 것에 기쁜지 웃으며 로시에게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며 속삭였다. '널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나밖에 없어. 난 널 사랑해.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뭘까? 안 그래? 나는 널 사랑해. 그리고 너도 날 이렇게 찾아왔잖아? 너도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해. 내가 어릴 적 부터 기다려왔던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야.‘ 라며 사랑을 속삭였다. 로시가 보는 리카는 좀 이상했다. 리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지만 리카는 이게 원래 나 라면서 웃어 보였다. 어째서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이는지 알지 못했고, 세영이가 속삭이는 사랑과는 다르게 섬뜩하고 무서웠다. 이게 어쩌면 전에 말한 리카의 추악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로시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난, 인간이 되고 싶었을 뿐이야. 언니라면 인간의 다리를 내게 줄 수 있잖아?"
로시의 그 말에 리카는 섬뜩하게 웃다가 웃음을 뚝 멈췄다. '왜? 유성이가 같이 인간이라도 되어보자고 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로시 넌, 인어는 인간과 함께할 수 없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잖아?' 라는 말을 해왔다. 리카의 행동과 말에 로시는 움찔 일수 밖에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인간은 인어와 함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비록 불행한 선택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날 첫사랑이라고 말한 아이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런 확고한 로시의 표정에 리카는 로시을 감싸 안아 보였다. 아둔한 아이를 자신이 구원하고 아끼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어릴 적 길을 잃어 울던 로시을 찾아 다독이던 그 시절처럼 로시을 안아왔다.
"로시, 내가 전에 말했지? 인간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말이야…. 내 말 기억해야 해 로시야, 네가 나처럼 같은 아픔을 겪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그 녀석은 분명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널 속이고 있는 거야…. 네가 멍청하게 잡히길 바라고 있을걸? 아마 인간을 다리를 얻는다고 한다면 널 가차 없이 버릴 게 분명해…. 당연하지. 그 녀석이 바라는 건 네 예쁜 지느러미이니까."
지속해서 로시의 귓가에 속삭이며 로시의 지느러미를 쭉 만져보았다. 아이가 로시을 업어줄 때 아이의 체온으로 살짝 화상이 입은 자리를 리카는 매 만지며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카는 알고 있었다. 로시가 아이를 만난 것도 로시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는 눈치로 말했다. 어쩌면 눈치 빠른 로시을 위한 경고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리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로시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 같았고, 어쩌면 정말로 그런 거 아니냐는 생각은 꼬리를 물고 물어 점점 커져, 불안감이라는 괴물은 로시을 금방 잡아먹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시도해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아직은 놓고 있지 않았는데 그런 작은 희망을 리카에게 뱉는다는 것은 아이에게 사랑 고백을 할 때보다도 더 무서웠다. 다른 의미를 섬뜩함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작은 희망까지 꺼져버린다면 로시는 불안감에 먹혀버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리카가 자신만은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자만과 오만이 어쩌면 틀렸을지도 몰랐다. 리카는 당장에라도 자기 곁에 떠난다면 로시의 지느러미를 잘라서 라도 자신 곁에 둘 정도로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아이가 자신을 위해 용기 내어 다음에 또 보자고 말해주었는데 그것마저 들어줄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어떻게 잘 말하면 봐 주지 않을까? 한 번쯤은 정말 단 한 번쯤은 빈틈이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고, 로시의 목소리는 여러 의미로 떨릴 수 밖에 없었다. 육식 호랑이 앞에 놓인 초식 토끼와도 같았다.
리카는 그런 로시의 모습마저 너무 작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아…. 이래서 널 놓을 수 없는 거야 로시.' 로시는 생각이 많았고, 그 생각은 언제나 자기보호에 힘을 쓰곤 했다. 로시는 모두에게 착하고, 예쁜 아이로 자라왔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아끼던 언니가 욕을 먹어도 방관했고, 그런 로시의 마음을 리카는 전부 알고 있었다, 전부 알고 이용하였다. 로시는 착하니까 내가 좀 더 불쌍하게 나온다면 죄책감으로 인해 미안해하겠지. 그렇게 착하면서 자길 방관할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 깜찍해 보였다. 비틀려진 사랑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뭐가 되었던 로시는 자신을 찾아왔고, 그 행동이 자신을 필요로 해준다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게 너무 좋았으니까 그런 로시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자칫 죽어버리면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사라지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리카는 그저 로시가 적당히 기가 죽어 자신의 곁에 있길 바랐다. 그 수단이 위협과 협박이었지만 로시의 기를 죽이는데 그만한 게 없었기에…. 정말 오랜 시간을 공 들었다.
"빚…. 진게 있어…. 그래서…. 그것만 정말…. 그것만 갚고 싶어. 언니도 알잖아? 내가 빚…. 지고는 못 산다는 거. 단지 그…. 뿐이야."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정말로 목이든 지느러미든 날아갈게 분명했으니까. 로시의 떨리는 목소리를 리카는 잠잠히 듣다가 씩 웃어 보였다. 전부 알고 있는 듯했지, 내가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리가 없잖아? 라는 듯한 웃음이었고 '그래? 그럼 로시 네 목소리랑 인간의 다리랑 바꿔. 다시 돌아온다면 다시 그 목소리를 네게 줄게. 어때?‘ 라며 거래를 해왔다, 만약 인간의 언어를 로시가 아직 쓰지 못한다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건 큰 리스크 였다. 하지만 로시는 똑똑했고 인간의 언어를 쓰는 것까지 배웠다. 그걸 리카가 모르고 있다면 평생 모르고 있는 게 낫지 라는 일말의 희망도 품었다. 그런 로시에게 리카의 거래내용은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리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평생 목소리가 없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리카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란 자만과 오만은 어쩌면 남아있었을지도 몰랐다.
로시가 솔깃해하는 표정을 짓자 리카는 확신했다. 로시가 걸려들었다는걸…. 어차피 인간이 되어봤자 로시는 리카의 손바닥 안이나 다름없었다. 로시을 이토록 사랑하고 집착하면서 그동안 로시에게 아무 짓도 안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로시가 어디를 가던 어디에 숨었든 리카는 로시을 잘 찾아냈다. 로시의 일정한 생활 방식 덕분에 어디를 가는지, 뭐가 목적인지, 누굴 만나는지 대충 알 수 있었지만 오래된 추적기여서 로시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누구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로시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줄 생각을 가질 리가 없었고 그것도 그토록 자신이 듣고 싶던 사랑을 속삭이는 말은 용납할 수 없었다. 적당히 자비롭게 인간의 삶을 살게 해보고, 적당히 배신당해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때는 로시가 기가 팍 죽어있기를 바랐다. 어찌 보면 로시보다 리카가 더 영악하고 똑똑한 인어일지도 몰랐다.
리카의 솔깃한 제안에 로시는 고갤 끄덕였다. 그깟 목소리 목숨보다 더 중요하진 않잖아? 그렇게 목소리를 주고 육지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곳은 더는 세영이와 로시가 만나던 그 세계가 아니었다. 매연이 가득하고, 바다에 쓰레기로 가득해 더는 찾는 이가 없었다. 분명 로시가 첫사랑이라고 말해준 아이와 만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바닷속과 육지의 시간은 약간씩 다르게 흘러갔고 로시가 세영이를 믿을 수 있을까? 친구들과 가족들을 버리고 세영이의 삶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육지의 시간이 많이 흘렀고, 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도 아니었다. 늦어버린 인어공주는 절망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세영이와 다시 만날 확률도 없었지만, 약속했으니까 만날 거로 생각했다. 너무 안일했던 인어공주의 생각은 세영이 없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머리를 굴려봤지만 없었다. 세계는 너무 변했고, 국적도 신분도 없는 자신이 공기도 나쁜 이 육지에서 살아남는 건 확률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세영이를 만날 방법이 없었고, 다시 만나자고 말해준 세영이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은 결국 로시의 기를 죽이기 충분했고, 그건 리카가 노린 일 중 하나였다. 로시는 리카의 생각대로 아무것도 할 힘도 남지 않아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지느러미가 없는 인간 로시에게는 바닷물이 차가웠지만 점차 따스해지며 익숙해졌다. 아가미가 없어 그저 점점 숨이 막혀 가라앉기 바빴지만 로시는 웃어 보였다. '인간이 바다에 빠지면 이런 느낌을 받는구나….' 아이에 대해 알게 되어 그저 기뻤다. 그때 사채가 싫어서 구했다고 하지 말걸, 좀 더 당신에게 사랑을 속삭여볼걸, 벤더우드라는 사람은 결국 누군지 모르네 아쉽다.' 이라는 후회만 가득 품에 안은 체 점점 가라앉았다. 그런 로시를 기회를 노리는 물고기 마냥 리카는 로시을 안았고, 조건대로 다시 로시에게 목소리를 주고는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돌려주었다. 숨이 막히기 직전까지 오는 로시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잡을 틈도 없었지만 흐릿해지기 전에 개나리처럼 노란 머리카락이 보였다.
"역시, 널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어. 그렇지 로시?"
라는 리카의 말에 그저 로시는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다는 일말의 희망도 사라진 인어공주가 일어날 때쯤에는 가시 숲 속 안의 마녀가 사는 집안이겠지. 그저 리카의 품이 편안하고 이대로 '날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어릴 적 부터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몰랐다. 어디서부터 잘못 틀어진 걸까? 좀 더 빨리 아이에게 갔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잘 못된 관계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 일까? 배드엔딩 일까? 그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