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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새끼

꽥.
나는 오리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나도 어릴 땐 내가 늘 이야기의 주인공일 줄 알았다. 학예회를 위해 어린이집에서 했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연극. 남들이 오도카니 서 있는 나무나 공주를 웃기려 했지만 실패하고 처참히 쫓겨나는 기사역을 맡을 때, 나는 웃지않는 공주 역을 받았다. 절대 웃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공연 당일 엄마아빠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손까지 흔들며 웃는 바람에 선생님이 이마를 짚었지. 어쨌든 나는 주연이었고, 오랫동안 무대 위에 서있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내 인생 또한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향한 인사를 하며 박수를 받고 마무리 할 줄만 알았다.


스스로가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 잘 쳐줘봐야 조연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때는 언제 일까. 물론 조연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싶은 건 아니니까 그 이야기는 넘어가기로 하고, 나는... 15살 때, 그러니까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중2병으로 고생하신다는 그 시기였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들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Y대학은 대충 실수해도 갈 수 있는 곳 쯤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묘한 생각의 원인은 너무 잘났던 그 애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저 같은 중학생일 뿐이었는데도 왠지 모를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 애. 한 번도 자신의 입으로 성적을 말한 적이 없는데도 모두 그 애가 전교권의 성적이라는 걸 알았다. 운동 따위에는 관심도 없을 것 같은 흰 피부를 가졌는 데도 체육 수행평가 등수는 늘 상위권이었다. 겉멋 부리는데 눈이 멀어 반에서도 일진 놀이를 하던 친구들도 자리에 앉은 그 애가 여전히 펜을 쥔 채로 그들을 올려다보면 아무 말 못했다.


그 애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했지만, 동시에 이질적인 존재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모두가 그 애와 조별활동을 함께 하고 싶어했지만, 막상 한 조가 되면 그 애의 눈을 피하기 바빴다. 그 애와 친해지고 싶어 다가가던 아이들이 하나 둘 퇴짜를 맞을 때 그 애를 아니꼽게 보는 무리가 생겼다. 앞에서는 티 내지 못했지만 그들은 그 애를 반이라는 작은 우리 안에서 밀어내려고 했다. 그 애는 물론 신경 쓰지 않았다.


가끔... 그 애가 좀 무서워. 한 명이 물꼬를 트면 그 이후는 쉬웠다. 시크하고, 무뚝뚝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 애는 그냥 남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아니, 물론 관심이 없을 수는 있는데... 너희는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그 애 눈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금방 다른 이야기로 빠져버리고 말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이어진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 하는... 또 저 특징들만으로는 설명 못할 무언가를 가진 오묘한 그 애 정도나 되어야 드라마의, 영화의 주인공으로 세울 맛이 나겠지. 그 후로 종종 나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연필 끝을 책상에 톡톡 치며 시계를 바라봤다. 상위권도 하위권도 아닌 어중간한 성적을 가진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나와 비슷한 어중간한 성적의 아이들과 섞여 더 어중간한 성적을 받게 될 것이었다. 어중간한 대학에 입학하고, 어중간한 꿈을 찾아 어중간한 돈을 받고 어중간한 삶을 살아가겠지.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가 있다. 못생긴 아기 오리는 또래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도망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지만, 그 곳에서도 괴롭힘을 당한다. 다시 도망쳐 나온 곳에서 아기 오리는 봄을 맞이하여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는 백조라는 사실을 깨닫고, 백조 무리와 함께 아름답게 날아간다. 굳이 내 자신을 그 동화 속에 집어넣는다면 미운 오리 새끼를 괴롭히던 아기 오리 무리들 중 한 마리가 아닐까. 적당한 갈퀴를 달고 안일하게 헤엄치며, 쟤는 우리와 달라. 이상한 놈이야. 하고 수근대는 역할의.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인공은 주변과 달랐던 미운 오리 새끼고, 미운 오리 새끼를 내쫓은 후의 아기오리들은 더 이상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다. 태초에 남들과는 달랐던 미운 오리 새끼가 아플수록, 힘들수록 더 크게 성장을 할 것이고 그런 성장으로 사람들에게는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미운 오리라기엔 처음부터 너무 예뻤던 그 애는 언젠가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툭하면 어딘가 빈 듯한 얼굴을 했다. 나는 그 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몰라 할 수 있는 생각이 있었다. 모든 것에 관심 없는 그 애를 도대체 무엇이 힘들게 한 건지에 대한 추측, 그 애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인가하는 실 없는 류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생각들.


애초에 백조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노력한다면 그 자체로 교훈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겠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살 자신이 없었다. 중학생 주제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오리인 줄 알았던 백조가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로 그저그런 오리도 있어야 동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도 극대화되는 법이니까.


그 애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갑자기 뒤집어진 세상에서 각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역시 그 애는 백조였구나. 하고 텔레비전 속 화면을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온 세상의 관심을 받으며 날아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친구들이 그 애를 두려움 섞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애를 어떻게 바라봤던걸까? 오리 주제에 곧 백조가 될 오리를 향한 같잖은 동정? 그 애의 껍데기만을 보고 갖게 된 관심? 그것도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현재에도 그 애를 향한 내 마음을 정의 내리지 못했는데 폭풍같던 중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성인이 된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너무도 멀어져 닿을 수 없을 만큼 날아가버린 그 애를 내가 조금은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애는 오리들 사이에 있을 때에도 멀었다. 스스로 친 벽에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마주칠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그 까만 두 눈동자를... 나는 어느 날 문득 다시 마주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유현.
나는 아직도 그 미운 오리 새끼의 이름을 종종 되뇌이곤 한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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