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GL 드림입니다. 약간 네타 발언 있습니다.
사아야는 끝없이 길고 긴 길을 걸었다. 모자 장수와 티타임을 갖고 집으로 돌아갈 곳을 물색하던 차에 엄청난 소리를 들었다.
“여왕님이 오신다! 하트 여왕님이 오신다!”
응? 하트 여왕? 사아야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얼마 되지 않아 하트 트럼프 카드 몸을 한 병사들이 일렬로 늘어서 하트 여왕을 이끌고 왔다. 사아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내용이 떠올라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흐음.”
고고한 여왕 목소리가 들렸다. 여왕을 태운 가마를 내리는지 덜커덕, 하는 소리가 났고 이윽고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아라.”
사아야는 놀란 얼굴로 있다 이내 고개를 올렸다. 그러자 우아한 여왕이 얼굴을 드러냈다. 아름답다. 사아야는 크게 놀랐다. 동화에서 본 건 막, 머리 크고 그러지 않았나? 경악한 표정이 우스웠는지 여왕이 키득키득 웃었다.
“네 이놈! 어딜 감히 여왕님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짓느냐!”
“됐다. 신경 쓸 것 없다. 당연히 내 아름다움에 넋을 놓은 것일 테지.”
사아야는 대답 대신 여왕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런 사아야가 흥미로웠는지 여왕은 병사 하나를 불렀다.
“저 아이를 데리고 가자.”
“에?”
“네 이놈! 아까부터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느냐!”
“죄, 죄송합니다! 저는 여왕님을 처음 봐서.”
“하긴 그렇겠지. 그러니 그런 경우 없는 행동이 나오겠지.”
병사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지만 사아야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말마따나 집에서 얌전히 만화책이나 보고 있을 제가 정말 고전 동화 속 주인공마냥 갑자기 이런 이상한 곳, 정말 동화 속으로 떨어졌으니. 여왕을 봤어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나 봤을까. 실제로 여왕을 본 적 없는 사아야로선 당연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 세계에서는 앨리스가 오지 않은 걸까. 아까 사아야가 모자 장수에게 물었을 때도 그는 앨리스라는 존재를 모르는 눈치였다. 아예 평행 세계인건가. 의문을 참지 못하고 사아야가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러니까. 하트 여왕님.”
“무엇이냐?”
“저기, 여왕님은 앨리스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신가요?”
“앨리스? 네 친구 이름이냐?”
“아니에요. 그냥 여기 모험을 떠난 저 같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역시 모르는구나. 그럼 완전 평행 세계라고 봐도 되게 무방하겠네. 사아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역시 종잡을 수 없는 곳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둘러보던 사아야가 하트 여왕과 눈이 마주쳤다. 금색 눈이 그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싸움을 일으키고 그런다고? 인지 부조화가 일어났는지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던 하트 병사 하나가 가지고 있던 막대로 쿡쿡 옆구리를 찔렀다.
“아야!”
“쯧쯧. 평민이 감히 여왕님 앞에 서면 감사히 여겨야 할 것이지 어디서 그런 표정을 짓느냐! 이래서 배우지 못한 것들은 문제라니까.”
“내가 먼저 입을 열지 아니하였거늘 누가 이방인을 두고 무례를 범하는 것이지?”
고고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에 병사가 얼어붙어 어쩔 줄 몰라하더니 이내 무릎을 꿇었다.
“여, 여왕님. 잘못했습니다!”
“내가 마음에 든 아이를 함부로 또 한 번 건드리면 그 때는 정말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네, 네!”
마음에 들어? 왜? 제가 뭘 했다고? 온갖 궁금증과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한가득 이었지만 하트 여왕은 사아야가 정말 마음에 들기라도 했는지 아주 우아하면서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뭔가 잘못 걸린 것 같은데. 사아야는 어색하게 웃었지만 금색 눈을 보고 있자니 정말 여왕이 말하는 대로 흥밋거리를 만들어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왕을 보고 감정을 숨기지 못한 건 아주 큰 실수였다고 그 순간 사아야는 한탄하고 있었다.
“그래서.”
“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앨리스는 아닌 것 같고.”
“아, 제 이름은 사아야예요. 렌 사아야.”
“사아야.”
“네.”
“후후. 귀여운 이름이로구나.”
“전혀 안 그런데.”
“겸손할 필요는 없느니라. 자, 그러면 가 볼까.”
“네? 어디로요?”
“그거야 당연히 왕성이 아니냐?”
“저도 가나요?”
“아까도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널 마음에 들어 한다고 말이다.”
진심이었어? 사아야는 놀란 얼굴로 여왕을 보았다. 여왕은 소리 내어 몇 번 웃더니 사아야를 옆에 세웠다.
“자, 다시 왕성으로 돌아가자.”
“네, 여왕님!”
이상한 곳에 말려 들어간 기분이야. 사아야는 할 수 없이 병사들 뒤, 그리고 여왕 옆에 서서 그들을 쫓아갔다. 왕성이 어딘 줄도 모르지만 그래도 여왕이 자기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지켜 주기라도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