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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

 

 

동화 백설공주 AU
-살인, 유혈, 약간의 잔인함

 

  새하얀 피부, 까만 머리카락, 빛나는 푸른 눈동자. 태어날 때부터 잘 웃지도, 울지도 않던 아이는 순백의 눈을 닮았다 하여 백설공주라고 불렸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그리고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함께한 날. 궁 안은 사람들의 울음으로 가득했다. 탄생이 아닌 죽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자비로운 왕비님을 잃은 백성들, 자부심을 잃은 귀족들, 그리고 사랑하는 반려자를 잃은 왕은 왕비의 모습을 똑 닮은 백설을 보며 슬픔을 이겨냈다. 그렇게 백설은 어머니가 받던 왕국의 사랑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하나 백설과 왕비를 연결짓고는 했다. 작은 동물을 빤히 쳐다보는 백설에게서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던 왕비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운동이라면 질색하던 왕비와는 달리 검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미소지었다. 잘 웃지 않지만 화를 내지도 않는 모습에 감정 표현에 서툴지만 왕비님을 닮은 따뜻한 분이라며 칭송했다.
  그러나 백설이 보았던 것은 동물의 사랑스러움이나 기사들의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작은 몸속에 흐르는 피의 따뜻함과 검을 휘두르면서 상상하는 생명의 단절이었다. 사랑스럽고 여린 공주님의 본모습은 차가운 겨울이자 순수한 눈이었다. 싸늘한 겨울바람처럼 메마른 감정과 티끌의 선의조차 보이지 않은 순수악. 그것이 숨겨진 백설의 본성이었다.

  시간이 흘러 더는 비워둘 수 없던 왕의 옆자리가 채워졌다. 새 왕비는 전 왕비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화려하고 차가운 모습에 사람들은 어린 백설을 염려했다. 그러나 새 왕비는 백설에게 관심이 많았고, 사람들은 냉정한 왕비조차 우리 공주님의 사랑스러움에 넘어갔다며 기뻐했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새 왕비가 백설에게서 무엇을 보았고,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아장아장 걸으며 장난감 검을 휘두르던 백설이 진검으로 기사들과 대련할 때까지 백설의 곁에 새 왕비가 함께했던 진짜 이유를.

  그리고 어느 날, 사랑스러운 공주님이 사라졌다.

  성안은 발칵 뒤집혀 졌다. 당장 수색을 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외침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는 왕비에 의해 막혔다. 불만 끝에 수긍한 사람들은 그저 왕실에서 보낸 비밀 수색대를 믿고 기다렸다. 그래서 사실 비밀 수색대 같은 것은 없고 왕비가 개인적으로 보낸 사냥꾼만이 백설을 쫓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백설의 실종 뒤에는 왕비가 있었다. 왕비는 백설의 순수함을 알아보고 자신의 후계로 키우고 싶어 했고, 후계자시험을 위해 비밀리에 백설은 성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밖으로 나온 백설은 자신을 쫓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그 누구보다 본능과 직감이 발달한 백설은 누군가 자신을 사냥하고자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 뒤에 왕비가 있다는 것 또한. 흔치 않게 불쾌해진 백설은 이 기분을 왕비에게도 전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자신을 쫓는 사냥꾼들을 다시 왕비에게 선물로 보냈다.
  자신을 무시하는 첫 번째 사냥꾼은 눈과 입을, 유난히 검술과 사격술이 뛰어나던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손목과 손가락을, 발이 빠르던 네 번째는 발목을, 새하얀 귀가 눈에 띄던 다섯 번째는 귀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여섯 번째는 혀를, 마지막 일곱 번째는 심장을 뽑아 왕비에게 보냈다.
  이에 왕비는 기뻐하며 백설에게 독 사과를 내주었다. 이것이 왕비의 마지막 시험이라는 것을 알아챈 백설은 망설임 없이 사과를 먹고 기절했다.

  운이 좋으면 깨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대로 잠들겠지.

  그리고 백설은 운이 좋았다. 지나가던 이웃 나라 망나니 왕자 조 조가 그를 깨운 것이다. 백설은 추운 데서 자면 입 돌아간다며 자신을 깨운 조 조를 바라보았다. 조 조는 독 사과를 먹는 순간 자동으로 발동된 마법 경계에 구애받지 않았다. 백설은 선천적으로 마법에 대한 면역력이 있는 것인지 아무 타격 없이 백설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조 조가 흥미로웠다. 검 이후로 흥미가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첫 번째 관심이었던 검은 백설의 운명이었다. 그러니 두 번째 관심인 조 조는 제 짝으로 삼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백설이었다.

  조 조가 백설을 깨운 이유는 개미 하나 못 죽일 것 같은 귀티 나는 얼굴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에서 이 숲속에 누가 봐도 귀한 집 딸로 보이는 여자가 잠들어 있어서, 이대로 놔두다가는 어떤 이유로든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어깨를 흔들어 여자를 깨웠다.
  일어나는 백설의 모습에 조 조는 그제야 백설의 한쪽 손에 들린 검과 손을 볼 수 있었다.

  “위험할까 봐 깨웠는데, 괜한 걱정이었네.”

  조 조는 인상을 찌푸리며 짧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사나운 얼굴이 인상을 쓰자 더 사납게 보였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백설의 모습에 형 얼굴은 너무 무서우니까 안경이라도 쓰고 다니라 말하던 동생이 생각난 조 조는 아차 싶어 억지로 표정을 풀었다.

  “그쪽한테 화났다던가 위협하려고 했다던가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고. 그냥 내가 좀 사납게 생겨서 그런 거야 이건.”
  “응.”

  반사적으로 빠르게 변명을 내뱉은 조 조는 싱겁게 돌아오는 반응에 얼떨떨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다가오는 백설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한 발자국, 그리고 또 한 발자국. 백설은 다가가고 조 조는 물러서는, 갑자기 펼쳐진 이 기묘한 상황은 조 조가 헛발을 디디며 끝났다. 영문도 모른 채 넘어지려는 조 조를 백설이 잡아챘다.

  “조심해야지.”

  저를 보며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위험해 보이는 조 조 였다. 작은 키가 콤플렉스인 그와는 족히 20cm 넘게 차이 날 것 같은 큰 키와 생각보다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백설의 숙인 얼굴이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조 조는 여전히 제 허리에 감긴 백설의 팔을 풀며 얼굴을 붉혔다.

  “그, 그니까 왜 갑자기 다가오는데?”
  “생각보다 약하구나, 너.”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조 조에게 돌아온 대답은 뜬금없었다.

  “앞으로는 내가 지켜줄게. 그니까 나랑 가자.”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뻗는 백설의 모습은 갑작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며, 더군다나 약하다니. 눈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대충 알겠지만, 자신 또한 어디 가서 약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이가 없네. 내가 왜 약해? 그리고 나 왕자야. 네가 이렇게 함부로 해서도, 지켜준다 말할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알아?”

  백설은 조 조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왕궁에서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웃 나라 한의 왕자 조 조. 권력 싸움에서 승리한 가문이 왕위에 오르는 한나라의 선왕이 조 조의 할아버지였다. 현재 왕은 다른 가문에서 나왔으며, 다음 왕위 쟁탈전 또한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 쫓겨나듯 나라를 빠져나왔다는 것이 백설의 기억하는 마지막 기록이었다.
  그리고 조 조에게도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얼굴, 흑단같이 까맣게 빛나는 머리카락, 하늘보다 더 파아란 눈동자를 가진 공주, 백설.

  백설공주는 한나라에서도 유명했다. 아름다웠던 전대 왕비를 그대로 닮아 왕국의 사랑을 받는 공주.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스스로 검을 잡을 정도로 용감하며, 앞에는 꽃길만이 놓여있다는 그 공주.
  백설의 정체를 알아챈 조 조는 이것이 하늘이 제게 준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미 한나라에는 조씨 가문이 설 자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무엇보다 자신에게 손을 내민 이 사람이 바로 차기 왕이었으니까.

  조 조는 그렇게 백설을 따라 왕궁으로 돌아갔다.

 


  이웃 나라 왕자를 데려온 백설을 본 사람들은 안심하고 기뻐했다. 드디어 공주님께서 사랑을 하실 나이가 되었다며 온갖 축하가 날아들었다.

  왕비는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제 짝까지 찾아온 백설이 너무도 대견했다. 그래서 자신을 죽이러 찾아온 백설을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

  “이제 정말로 모든 것을 물려줄 때가 되었구나, 제자야. 나의 공주, 나의 딸아. 부디 이 세상을 혼란으로 물들여다오. 네 이름은 연리아, 완벽한 마녀란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백설, 아니 연리아는 왕비의 죽음과 함께 왕국을 무너뜨렸다. 하얀 눈이 핏빛으로 물들어간 그 날 밤, 왕궁에서 살아남은 것은 연리아와 조 조, 그리고 마녀의 수하들뿐이었다.
  연리아는 무너져버린 왕국을 조 조의 손에 쥐여 주었고, 조 조는 그동안 자신이 꿈꿔왔던 왕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잊혀진 공주, 연리아는 스승이자 전대 마녀의 유언에 따라 세상을 혼돈으로 무너뜨리는 완벽한 마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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