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동화
창천의 이슈가르드 3.0~3.1과 암흑기사 50~70 잡퀘스트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여자중원휴런 모험가(이름: 애슐리)가 등장합니다. 모험가는 2회차를 하는 회귀자 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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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나라, 이슈가르드에는 사대명가라는 유서 깊은 가문이 넷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 포르탕 가문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검은 머리가 아닌 아름다운 비치색 머리의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아이의 이름은 오르슈팡. 그는 장성하여 가문의 방패이자 검인 훌륭한 기사가 되었답니다. 오르슈팡은 자라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영웅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영웅 또한 오르슈팡의 착한 내면을 알아보고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오르슈팡은 영웅을 가슴 깊이 사랑한 나머지 위기에 처한 영웅을 구하고 영웅을 대신 하여 그 운명을 지게 되었습니다. 오르슈팡의 희생으로 위기를 넘긴 영웅은 이슈가르드를 구원했어요. 그리하여 이슈가르드는 천년의 전쟁을 끝낼 수 있었고, 성도의 사람들은 오래오래 영웅의 이름을 드높여 칭송했답니다.
하지만 오르슈팡의 가족들 외에도 이 이야기를 아는 성도의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워 했던 것은 바로 그를 사랑한 영웅이었습니다. 영웅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졌고, 또 영원한 잠에 잠기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말았거든요. 그 잠은 사랑하는 이의 입맞춤으로 깨어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 영웅은 얼핏 보기에는 고난을 극복한 것처럼 보였고, 또 괜찮아 보였지만 마음에는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 상처는 낫지 않아 날을 거듭할수록 깊어지고, 덧입혀지고, 더해졌습니다. 영웅은 오르슈팡과 이별한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많은 사람을 떠나왔거든요. 그리고 그 앞날에도 많은 이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별의 운명을 짊어진 영웅이란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지쳐있던 영웅은 어느 날 자신의 그림자에 대고 말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만 하지?”
“그렇다면 넌 어떻게 살고 싶은 거지?” 그림자가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그들의 곁에 머무르고 싶어. 남들처럼 나를 사랑하는 그들을 사랑하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만끽하고 싶어.” 영웅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싸우는 자를 암흑기사라 부르지. 암흑기사는 그 사랑하는 사람만을 보며 살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암흑기사는 또 일어서고 말테지. 그리하여 암흑기사는 지켜야 할 사람이 늘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된다.” 그리 말하는 그림자는 검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기쁘지는 않은 목소리였습니다.
“이별한 사람들이 보고 싶어.” 영웅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네가 곧 이별하게 될 사람들이야.” 그림자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의 끝을 볼 거야. 그리고 나서 다시 시작할거야. 그때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괜찮을 거야. 더 이상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테니 세상에는 슬퍼할 사람이 없을 테고 나 역시 행복해질 수 있겠지.”
“하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은 너 하나야. 남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는 너는 외로울 거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하여 남들을 피해 구석에서 울어야 하겠지. 외톨이가 되고 말 거야.”
“아니. 나는 외톨이가 아니야. 내게는 그림자가 있으니까.”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영웅은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오랜 시간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걸음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많은 사람들과 작별했습니다. 그 중에는 영웅이 사랑했던 오르슈팡처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영웅은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소중히 기억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그들의 이름을 부를 날이 오기라도 할 것처럼.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넘어, 영웅은 마침내 세상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영웅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 더 이상의 슬픔도 잠도 없을 테지만 영웅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그림자와 했던 약속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영웅은 세상을 구하는 것 외에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영웅은 본디 모험가의 신분이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영웅이 다시 모험을 떠난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기도와 의지로 빚어낸 시간의 신 알디크여, 내가 이 에오르제아에서 처음으로 눈 뜬 시간으로 데려다다오.”
지금껏 영웅이 쌓아온 선행 때문일까요? 시간의 신은 영웅의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영웅은 과거로 되돌아갔습니다. 처음의 결심대로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그 중에는 영웅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연인, 오르슈팡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어딘가 익숙한 풍경 같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다른 그런 나날들을 영웅은 사랑했답니다.
그리하여 영웅은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만족한 매일을 보내는 가운데 그만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것은 바로 동료들의 희생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동료들의 희생으로 극복했던 위기들 말이에요. 영웅은 자신이 사랑한 이들을 영원한 잠에서 구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과거에는 동료들의 희생으로 인해 넘어갈 수 있었던 위기가 영웅의 앞에 남아있었어요. 이제는 과거와 같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에 영웅은 스스로의 지혜로 이 위기를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이 희생을 피해갈 수 없다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을 바에야 차라리 내가 되리라.’
영웅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행복했어요. 그런 만큼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을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었답니다. 그렇기에 영웅은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자신의 영원한 잠을 준비했어요. 영웅만의 비밀이었기 때문에 영웅과 가장 가까이 있던 친구들도, 사랑하는 오르슈팡도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오르슈팡은 영웅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영웅의 얼굴에서 오르슈팡이 사랑했던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든 일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오르슈팡은 영웅을 불러 단 둘이 남아 말했어요.
“나는 너를 믿으며 네 선한 마음을 지키고 나의 신께 네가 무사하길 기도할 거야. 언제나처럼 말이야. 애슐리, 항상 이 오르슈팡이 널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다오.”
영웅은 연인의 따뜻한 말에 감동했어요. 하지만 오르슈팡에게 털어 놓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시간을 되돌린 영웅이 짊어가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영웅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말겠노라 또 다짐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때가 다가왔어요. 영웅은 사룡 니드호그와 맞설 수 있는 같은 칠대천룡인 흐레스벨그와 함께 성도로 돌아왔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성과 건물,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 도망가는 사람들을 지나 영웅은 앞으로 걸어갔어요.
“애슐리, 기다리고 있었다!”
영웅이 오기 전, 검과 방패를 들고 다른 기사들과 함께 백성들을 지키며 니드호그의 부하들과 맞서 싸우고 있던 오르슈팡이 소리쳤어요. 그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어요. 과거에 오르슈팡은 영웅이 흐레스벨그와 함께 성도를 찾아왔을 쯤에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었거든요.
전과는 다른 풍경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데도 영웅은 무척 기뻤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 영웅의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했어요. 이제 영웅은 이 자리에서 죽게 되더라도 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사실 영웅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이 자리에 섰다는 것을 그의 연인조차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성도로 돌아오는 걸음에서조차 망설이고 있었던 애슐리의 결심을 굳혀준 것은 오르슈팡이었습니다. 그러니 영웅은 깊은 전장 속으로 나아갔습니다.
쓰러진 흐레스벨그, 잿빛 연기,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영웅의 손에는 용의 눈이 있었습니다. "흐레스벨그, 네 놈!" 호통하는 니드호그를 향해 영웅은 대검을 빼들었어요. 그리하여 다시금 반복된 천년의 전쟁과, 그 전쟁을 끝내기 위한 영웅의 싸움이 펼쳐졌습니다! 예정된 결말처럼 영웅은 쉽게 니드호그를 쓰러뜨렸어요!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영웅이 바랐던 '모두를 지켜내는 결말'을 위해서는 니드호그가 몸을 빌린 용기사 또한 구해야만 했습니다. 영웅과 그의 동료인 어린 현자가 달려가 용기사의 몸에 박힌 마력의 근원을 붙잡았어요! 하지만 역시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무리였을까요? 과거에도 영웅과 어린 현자는 둘만의 힘으로는 용기사를 구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보다 먼저 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가능한 일이었어요.
영웅과 어린 현자는 몸이 여덟 갈래로 찢겨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정신이 한계에 달하기 시작하면서 시야가 흔들릴 정도로 괴로웠어요. 영웅은 생각했어요.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이대로 죽는 수밖에 없나?' 그리하여 어지러움에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 그때.
어린 현자가 무너지려던 때, 그의 어깨를 단단하게 감싸는 곧은 손길이 있었어요. 그 손은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흰 살갗이었지만 지친 몸을 북돋아주는 따스함이 있었고 매우 강인하여 그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어요. 고개를 들어 손의 주인을 알아본 어린 현자는 놀라움에 파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영웅에게도 든든한 손이 와있었어요. 마력의 근원을 붙잡은 영웅의 손 위로 크고 두터운 두 손이 다가와 영웅의 손등을 감쌌어요. 영웅은 그 손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이번 손은 환영이 아니었어요!
"이젤! 오르슈팡 경!"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성도의 소식을 듣고 달려왔단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사내로구나."
"친구가 목숨을 바쳐 싸우러 가는데 또 혼자 보낼 수는 없지. 그런 건 야만신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광경이 있죠. 영웅에게는 그것이 꼭 지금과 같은 과거였습니다. 언제나 이 풍경이 마음 속에 있었죠. 그렇기에 용시전쟁이 끝나고, 눈보라가 그치고, 성도가 복원된 후에도 영웅은 항상 추운 눈바람을 맞으며 무너져 내리는 성도에 영웅은 홀로 그림자처럼 오도카니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영웅은 혼자가 아니었어요.
네 사람의 힘이 온전히 더해진 그때, 용기사의 몸 깊숙하게 박혀있던 마력의 근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마력의 파장으로 인해 영웅과 어린 현자는 멀리 날아갈 뻔 했지만 다행히 곁에 있던 동료가 그들을 버티게 해주었어요. 겨우 정신을 부여잡은 영웅과 어린 현자는 마력의 근원을 그 누구도 손에 넣지 못하도록 저 깊은 절벽 아래로 내던졌습니다. 얼마나 깊고 깊은 절벽인지 던진 것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정도였어요.
걱정도 많았고 힘을 모두 썼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도감 때문일지도요. 영웅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영웅은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의 영웅에게는 발밑에 그림자가 없었어요.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영웅은 그 그림자가 자신의 곁에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이제는 외롭지 않아?" 그림자가 물었어요.
"그래." 영웅이 대답했어요.
"이제 행복할 수 있어?" 그림자가 다시 물었어요.
"그래." 영웅이 다시 대답했어요.
"다행이네. 나도 소원을 이뤘어."
그림자의 소원이란 무엇일까요? 말을 하는 그림자의 몸은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어요. 곧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인지한 영웅은 그림자를 향해 두 팔을 벌렸습니다.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어요. 그림자의 모습은 온통 칠흑색뿐이었지만 그때 영웅의 그림자에게서는 어쩐지 기쁘고 행복한 감정이 전해져왔어요. 영웅과 그림자가 하나가 되자, 영웅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창가에는 노을이 흘러들어오고 있었어요. 눈 그친 커르다스의 하늘은 오랜 전쟁이 끝난 자축하려는 마냥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여 있었어요. 창가에 스민 노을이 방 안까지 들어왔지만 누운 영웅의 몸 위로 진 인영이 주홍빛의 범람을 막아주고 있었어요. 영웅은 그것이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습니다. 영웅은 말없이 그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봤어요. 시선을 느낀 오르슈팡은 고개를 들고는 영웅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오르슈팡은 무척 기뻐하며 바깥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뛰어나가려 했어요. 바삐 나가려는 오르슈팡의 손목을 잡은 것은 영웅의 손이었어요.
"보통 이런 동화이야기의 결말은 주인공이 나라의 주인이 되거나… 멋진 연인과 키스를 하게 되던데."
"후후, 아주 좋은 이야기로군! 그렇다면 이 오르슈팡이 널 동화의 주인공이 되게 해줘야겠군."
애슐리의 너스레에 오르슈팡은 더더욱 기뻐하며 커다란 두 손으로 영웅의 얼굴을 소중하게 감쌌어요. 애슐리는 분명 오르슈팡이 석양을 등지고 있는데도 뺨이 약하게 상기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애슐리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어요. 연인의 웃는 얼굴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오르슈팡 역시 행복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오르슈팡이 구한 영웅, 영웅이 다시 구한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평화로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세계 가운데 입을 포갠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키스를 나누며 지금 이 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연인이 되었습니다. 서로를 위해 평생을 바치며 사랑한 두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